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헬무트 슈미트 (문단 편집) === 유년기 === 1918년 12월 23일 [[독일]]의 [[함부르크]]에서 교사인 구스타프 루트비히 슈미트와 루도비카 코흐의 2남 중 첫째 아들로 태어났다. 헬무트 슈미트의 아버지는 부모(=헬무트 슈미트의 조부모)로부터 버림받은 [[사생아]] 출신이었다. 사실 헬무트 슈미트의 생물학적 친할아버지는 [[유대인]] 사업가이자 은행가 루트비히 그룸펠이었다. 젊은 시절 그룸펠은 사업차 방문한 [[함부르크]]에서 만난 [[웨이트리스]] 프리드리케 벤첼과 짧은 만남을 가졌고 이들 사이에서 헬무트 슈미트의 아버지인 구스타프 루트비히 슈미트가 태어났다. 그러나 루트비히 그룸펠은 자신의 혼외 아들인 구스타프에 대한 어떠한 법적인 책임과 부양도 거부하였다. 그리고 그룸펠은 이후 헤트비히 라이저라는 젊은 여성과 정식으로 결혼한 후 자신만의 가정을 꾸렸다. 구스타프 루트비히 슈미트는 태어나자마자 버려져 부두 노동자인 구스타프 슈미트와 그의 아내 카타리나의 가정에 입양되어 길러졌다. 헬무트의 이러한 출생의 비밀, 특히 그의 할아버지가 유대인이라는 사실은 [[반유대주의]] 때문에 그의 가족들만이 아는 비밀로 오랜 시간 동안 묻혀 있었다.[* 나치의 혈통 기준에 따르면 조부모 4명 중 한 명 이상이 유대인이면 유대인으로 취급했다.] 헬무트의 생물학적 친할아버지인 그룸펠은 1900년 은행을 창업하였다. 그러나 1935년 유대인 그룸펠은 나치에게 은행과 재산을 몰수당하고 추방당했다. 그의 가족들은 뿔뿔이 흩어졌다. 그러나 그룸펠과 그의 가족들은 수용소로 끌려가지는 않았고 모두 타지에서 각자의 삶을 살았다. 이미 75세의 고령이었던 루트비히 그룸펠은 얼마 후 자연사했다. 슈미트의 회고에 따르면 자신에게 유대인의 혈통이 흐른다는 것을 처음 알았을 무렵은 10살 무렵이었다고 한다. Thomas Karlauf의 저서에 따르면 헬무트의 나이 15 ~ 16세 무렵에 헬무트의 양할머니 카타리나 슈미트가 가족들에게 구스타프 슈미트의 친아버지가 유대인이라는 사실을 이야기했다고 한다. 독일공영방송 [[ZDF]]의 전기 다큐멘터리에서 묘사된 바로는, 다른 종류의 가정 통신문인것처럼 위장해서 아버지의 서명을 받아 당시 한창 청소년 사이에서 세를 불리고 있던 [[히틀러 유겐트]]에 가입하려고 하다가 딱 걸려서 그대로 불꽃 싸다구행(...) 이후 어머니를 통해서 아버지가 유대계 혈통을 타고난 걸 전해듣는다. 슈미트의 회고에 따르면 10살 무렵 자신의 할아버지가 유대인이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부터 슈미트는 자신이 나치에서 성공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나치에 대한 반감을 갖기 시작했다고 훗날 말했다. 하지만 슈미트는 부모의 반대에 불구하고 히틀러 유겐트에 가입했다. 이후 그는 14세 때 그는 그룹 리더(Scharführer)가 되었고, 18세때 징집되어 입대할 때까지 계속 활동했다. 이처럼 슈미트는 10대 시절 히틀러 유겐트의 그룹 리더였고 나치와 관련하여 매우 불분명한 행각과 입장으로 인해 나치 가입 떡밥들이 나돌았다. 하지만 슈미트가 정치 활동을 하는 동안에는 그가 적극적인 나치 활동을 했다는 직접적인 증거들이 드러나지는 않았기에 슈미트는 아슬아슬하게 이런 논란을 비켜가곤 했다. [[콘라트 아데나워|하지만 이는 나치에 저항했던]] [[빌리 브란트|경력이 분명했던 전임자들]]과는 차이나는 부분이었다. 때문에 그가 정책적으로 중도 실용주의를 추구했다는 점과 결부되면서 우파 뿐만 아니라 좌파들 사이에서도 그를 공격하는 사람들이 많았던 이유 중 하나가 되었다. 슈미트의 나치 관련 논란은 2014년 관련 저서가 발간되며 다시 한번 논쟁이 되었다. 1942년에 작성된 나치 문건을 근거로 그가 충설한 나치 당원이었다는 것. 하지만 슈미트가 고령으로 투병하던 시점이었고 몇 개월 후 그가 사망하면서 그냥 묻혀가는 모양새가 되었다. 슈미트의 할아버지가 유대인이라는 사실은 그가 총리직에서 물러날 때까지 대중들에게는 알려지지 않았다. 그 사실이 알려지게 된 것은 그가 [[내각불신임결의]]를 맞고 총리직에서 물러난 뒤인 1982년으로, 그와 단순히 정치적 동반자 관계를 넘어서 친구관계로 평생 우정을 나눈 프랑스의 대통령 [[지스카르 데스탱]][* 슈미트가 좌파정당 소속이었던 데 반해, 지스카르-데스탱은 우파정당 인사였다.]이 밝혀서 알려지게 된 것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